| 계원담총-이승규 | |
|---|---|
| 작성자원혁()작성일2025-11-29조회수159 | |
| 파일첨부 IMG_5195.jpg | |
|
'계원담총'은 임영대군의 16세손 창동 이승규(1882~1954)의 근대 시화 평론 한문 저서 제목으로 최근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 팀과 한글로 번역하여 출간 되었습니다. *. 이 책은 유명인들의 시가 소개되며 평론한 필사본으로 내용 중 임영대군 증손자 탄은 이정과 고손자 귀촌 이덕온의 시가 소개되며 평론한 내용(105면)도 수록되어 있다. 탄은 이정의 시를 차운한 제가의 시편 비교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은 왕실과 가까운 친족으로 시(詩)와 글씨, 그림이 모두 신묘한 경지에 들었으므로 세상에서 삼절(三絶)로 일컫는다. 그의 조카 구촌(龜村) 이덕온(李德溫, 1562~1635) 또한 시문으로 세상에 이름이 났다. 모두 멋지고 훌륭한 공자이다. 李灘隱霆以皇室懿親, 詩書畵俱入神, 世稱三絕. 其姪龜村德溫, 亦以詩文鳴于世. 俱翩翩佳公子也. ◎. 이정의 「강상시(江上詩)」는 이렇다. 광릉진(廣陵津) 나루에는 물이 푸르고 水碧廣陵津 광릉의 나무엔 꽃이 붉구나. 花紅廣陵樹 나그네 십 리 길 가는 도중에 行人十里程 날 저물고 푸른 산엔 비가 내린다. 日暮蒼山雨 ◎. 이덕온이 차운한 시는 이렇다. 먼 하늘에 저녁볕 새어 나오고 遠天漏夕暉 저편 물가 안개 나무 흐릿하구나. 極浦迷烟樹 강가의 늙은이는 도롱이 쓴 채 一蓑江上翁 비 오는 외론 배에 저물녘 섰네. 暝立孤舟雨 -. 이정(李霆, 1554~1626): 조선 중기에 활동한 왕실 종친(임영대군의 증손자이며 익주군의 5자)이자 서화가로서 묵죽화로 이름이 났다. 자는 중섭(中燮), 호는 탄은(灘隱)이다. 시 · 서 · 화에 뛰어나 삼절(三絶)로 명성이 높았으며, 특히 묵죽화에서는 유덕장(柳德章) ·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시대 3대가로 손꼽힌다. 현재 사용되는 5만원권 지폐 뒷면 뒷배경 풍죽도가 그의 작품이다. -. 이덕온(李德溫, 1562~1635): 익주군의 손자이자 호남군의 아들. 자는 사화(士和), 호는 구촌(龜村)이고 조선시대 『구촌집』을 저술한 학자이며 동부승지, 우부승지를 역임. *. 계원담총(지은이 : 이승규 / 한글 번역 : 한양대학교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외)
-. 저자 이승규의 일생 (번역자 정민 교수의 연구 내용 중에서~~) 20대 초반에 상경해 성균관에 입학한 후엔 일제의 국권 침탈을 목도하며 근대 학문과 민족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재학 당시 독립운동가들과 교유했고,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빼앗기자 민족 지도자들과 함께 국권회복운동 전면에 나섰다. 합방 후에는 만주 한국사관학교(신흥무관학교 전신) 설립에 참여했으며, 고향에 돌아온 뒤에는 지역 유지들과 힘을 모아 4년제 소학교인 옥성학교(玉成學校)를 설립했다. 이후에도 여러 방면으로 조국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했다. 1920년에는 보성학교 교사로 자리를 옮겼고,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 전신) 설립에 참여했다. 1922년에는 휘문학교로 자리를 옮겨 후진 양성과 조선어연구회 및 집필 활동을 활발히 진행했다. 1942년과 43년에는 총독부 기관지인 『경학원잡지(經學院雜志)』에 「조선시학고(朝鮮詩學考)」를 잇달아 발표하는 등 그간과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드러난 친일 행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경학원 내 친일 세력과도 오래잖아 결별의 수순을 밟았다. 1947년부터 6.25 발발 때까지 서울시립농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진을 양성하다 귀향했고, 1954년 3월 1일 7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의 저술들 그의 저술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먼저 ‘창동시집(滄東詩集)’이란 부제가 달린 『간암만록(艮庵謾錄)』에 240제 347수의 자작 한시를 남겼다. 필사본 『계원담총』 뒤에도 『간암만록』이란 같은 제목 아래 30제 41수의 한시가 따로 남아 있다. 시화로는 『계원담총』이 대표작이고, 이밖에 『동양시학원류(東洋詩學源流)』와 『대동시화집성(大東詩話集成)』이 있다. 따로 『계산시화(桂山詩話)』, 『시단금설(詩壇金屑)』, 『일사시화(逸史詩話)』 등의 3종 시화를 신문 연재 형식으로 집필하기도 했다. 보건대 이승규는 무엇보다 특별히 시화 방면에 큰 성과를 남겨 일제 강점기 1930년대 시화사에서 우뚝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의 산문 중에는 『정다산선생전』과 『이충무공전』이 단연 눈길을 끈다. 『계원담총』, 근대 시화사 끝자락의 정채로운 시론 ‘계원’은 종로구 계동(桂洞)에 있던 저자의 처소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신라 최치원의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의 용례에서 알 수 있듯 문원(文苑), 즉 문단(文壇)의 뜻도 담긴 중의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즉, 서사는 간결하게, 대구는 온당하게, 글자는 노련하게, 소리는 고상하게 놓여야 비로소 한 편의 시가 혈맥이 살아 움직이고 수미가 갖추어져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하지만 근대의 한시들을 보면 서둘러 이루려다가 너무 밋밋해지고, 재주를 부리려다 기교에 빠지고 마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전체 작품의 연결과 구성을 따지지 않고, 한 연(聯)의 공교로움만 다투느라 전편의 완성도를 잃고 마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그는 이러한 시관(詩觀)을 통해 자신이 『계원담총』에서 시를 선별한 기준을 비교적 분명히 제시한다. 첫째는 시대별로 풍조가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각 시대마다 그 시대 특유의 취향이 있으므로, 현재 취향으로 옛 시를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둘째는 작가별 개성의 차이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고, 색깔이 다르기에 한 가지 기준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 셋째는 각각의 시편이 지어진 정황이 다른 점이다. 그때 그 의경(意境) 속에 놓여보지 않고서 주관적 판단에 따라 멋대로 평가할 수 없다. 넷째는 옛 시의 감춰진 행간을 뒷사람이 헤아리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당시 무언가 뜻이 있어 한 말을 문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쌍방의 감수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다섯째는 취사선택의 기준이 같지 않은 점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평가 또한 달라지고 만다. 인용한 매 작품 끝에 단 작가의 촌평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명확히 짚어내 평자의 균형 잡힌 선시(選詩)와 시평의 안목을 잘 보여준다. 이는 이전 시기의 시화들과는 결을 크게 달리하는 부분이다. 아울러 선별한 작가들의 구성으로 보면, 역대 시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재야의 시인을 소개하려 애쓴 흔적이 뚜렷하다. 한시의 미학 가치가 퇴조하던 시기에 전통적 미감과 안목으로 펼쳐 보여준 한시사 정리는 그래서 더 가치가 높다. *. 편집자(옮긴이) : 이원혁(1959~ ) 저자(이승규)의 증손자로 충남 보령시 주산면 증산리에서 출생, 조상들이 남긴 소중한 자료를 발굴하고 탐구하여 종친들과 공유할 때 가슴이 따뜻해 진다. 필자가 운영중인 '덕온가문산책'이란 온라인 카페에 오시면 더 자세한 내용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
|
| 이전글 | 임영대군의 현손 이덕온 |
|---|---|
| 다음글 | 임영대군 차남 귀성군 축출 사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