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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대군과 여색
작성자이원혁()작성일2023-11-20조회수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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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대군의 후손으로써 망설이다가....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조선왕조 실록에 기록되어 있으며 공개된 사실들 이므로.....


임영대군(1420~1469) 이구는 세종의 4남으로 1445년 세종의 명의 받아 총통 제작을 감독하였고, 1450년 문종의 명을 받아 화차를 제작하였다.

세종은 임영대군 이구를 사랑했지만 이구는 여색으로 많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창기(기생) 금강매를 첩으로 삼고, 내자시(왕실의 재물 담당관서)의 여종 막비와 간통했는데 그가 소헌왕후(세종의 비)의 시녀로 들어간 후에도 사통(부부가 아닌 남녀가 몰래 서로 정을 통함)을 멈추지 않았다.

궁중 인수부의 여종 금질지와도 사통했다.

추문이 돌자 세종은 1439년 5월 영의정 황희 우의정 허조를 불러 비밀리에 의논해 이구의 직첩을 환수하였다.

그리고 금강매는 고향 공주로 돌려보내고, 막비와 금질지도 원래 속한 부서로 돌려보냈으며 이를 알선한 환관들도 처벌했다.

세종은 이구를 지방으로 유배 보내고 환관들의 목을 베려고 하다가 황희와 허조가 가벼운 법을 따르기를 청해서 못이기는 척하며 관대하게 처리한 것이다.

이때의 기록에 “이구는 학문을 좋아하지 않고 여색에 깊이 빠졌는데 성상(세종)은 성품이 엄격해서 여러 종친과 아들을 바른길로 이끌면서 조금이라도 범한 바가 있으면 반드시 꾸지람을 더해서 모두 감히 불법을 자행하지 못했다. 이구는 여색 때문에 두 번이나 꾸지람을 듣고도 오히려 뉘우쳐 고치지 않았다”

- 세종실록 21년 5월3일

슬하에 9남 2녀를 두었다.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박영규 저)

. 조선왕조신록(이덕일 저)

. 이한우의 군주열전(이한우 저)

. 네이버, 다음,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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