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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 때 임영대군 관련 기록
작성자이원혁()작성일2023-11-21조회수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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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의 4남인 임영대군 이구는 둘째 형인 수양대군(세종 2/세조)이 정권을 잡자 그를 보좌하여 신임을 받았다.

단종(조선의 6대 왕)의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이유는 임금이 되기 위해 조부(태종 이방원)가 그랬던 것처럼 손에 많은 피를 묻혀야 했다.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무력으로 빼앗은 거사 날(14531010) 무인들을 데리고 좌의정 김종서의 집을 찾아가 그를 제거했다.

문무를 겸비하고 당시 병권을 쥐고 있던 좌의정 김종서를 제거했으니 나머지 신하들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수양은 왕명을 빙자하여 영의정 황보인 등 대신들을 불러들여 대궐 각 문 마다 역사들을 배치하여 살생부에 오른 대신들은 때려죽이게 했으며 윤처공 등은 역사를 집으로 보내 죽여버렸다. 귀양을 보낸 우의정 정분 등은 이듬해 추석 때 모두 죽여버렸다.

공신들이 지지한 동생 안평대군(세조 3)과 그 아들 이우직을 강화로 유배 보냈다.

이 쿠테타는 단종 1년 계유년(1453)에 일어났다 하여 계유정난이라 불렀다.

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한 수양은 영의정에 오르고, 다시 왕위를 계승 받는다.

 

*. 상왕 복위 기도 사건

좌부승지 성삼문과 중추원부사 박팽년을 중심으로 동지들을 모아 세조(수양대군)를 제거하는 거사 일까지 결정하고 세부계획을 수립한다.

그러나 계획은 변수가 발생하여 연기되면서, 다음날 고변자가 나타났다.

성균관 사예 김질 이었다. 그의 장인 정창손이 대궐로 달려가서....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뀐다.......

145662일 비밀이 탈로나 가담자 모두는 고문과 처형, 유배로 ....

이 사건이 상왕 복위 기도 사건으로 학창시절 배웠던 죽음으로 의리를 지킨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집현전 출신 유학자들과 성승, 박쟁 같은 무신들이 결합해 단종을 복위시키려던 사건이다.

당연히 가혹한 정치 보복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데 이 사건에 연류된 수 많은 사람들을 능지처사(사자가 찢겨 죽음) 되거나 옥중에서 죽음을 맞는 등 모두 처형되고 ......

단종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다.

강화도로 유배 보냈던 안평대군은 사사시키고, 이우직은 진도로 유배 보냈다.

단종을 지지한 금성대군(세종6) 그리고 이복동생 한남군, 영풍군 등도 귀양 보냈는데 이들 모두는 목숨을 지키지 못하고 세조에 의해 살해되었다.

세종의 아들들 중 단종을 지지하는 자들과 그 가족들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또한 난신전이란 명목으로 자신들이 죽인 신하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 가족들(어머니, , 딸 등)과 첩까지도 세조편에 서있던 사람들에게 하사했다.

임영대군 이구는 이(계유정난) 때 유배간 친동생 금성대군(세종 6)의 당진 전지와 성삼문의 당진과 양주 전지를 차지하였다.

그 외의 땅들과 처, 첩은 영의정 정인지를 필두로 세조 측 인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그나마 종친들은 재산만 나누어 가졌고 여자들은 손대지 않았으나 서자들 중 몇 명은 처, 첩을 받아갔다.

골육상전은 여러 가지로 보나 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14579월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단종 복귀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어 단종은 다시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1달 후 10월에 17세의 나이로 세조에 의해 사사 되었다.

그리고 세월은 흘러 세조는 재위 14717일 동생 임영대군의 둘째 아들 귀성군 이준(1441~1479)27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영의정으로 소년 수상에 발탁한다.

그러나 예종(조선 8대왕/ 1450~1469)죽은 날 곧바로 자을산군(성종 / 조선의 제 9대왕 / 1457~1494)을 왕위에 앉혔다.

그리고 왕실 세력의 중심이던 28세의 구(귀)성군 이준을 경북 영덕으로 유배시켰다.

이후 유배지에서 39세 나이로 사망한다. 후사는 없다.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박영규 저)

. 조선왕조실록(이덕일 저)

. 군주열전(이한우 저)

. 네이버, 다음, 구글

. 단종실록, 세조신록(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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